90년대, 그러니까 내가 초딩이나 중딩정도 되었을 적 우리 가족의 여행은 곧 동해바다였다. 7월말 8월초의여름휴가때면 으레 동해로 갔었다. 아버지가 바다를 좋아해서였겠지. 어머니는 산을 더 좋아하셨던것 같지만...
새벽에 집을 출발해서 동해안을 따라 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대충 아무 해변에서나 텐트를 치거나 민박에 묵는다.
간혹 여관방에 묵을때도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안좋다던지? 뭐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여행을 가서 호텔에 묵는다. 라는건 뭐랄까 어릴땐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여행의 형태였다. 그 당시 우리집은 아버지가 회사에 다니시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던 한국의 흔한 소시민...정도 였던것 같다. 그러니까 그정도가 90년대 한국의 흔한 휴가나 여행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보니 80년대 초반에 경주로 신혼여행을 가셨던 우리 부모님은 그땐 호텔이라는 곳에 묵으셨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카우아이.라는 섬 이름은 아마도 2006년에 나온 하루키의 단편집 도쿄기담집에 수록된 '하나레이 만'에서처음 접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당시 나는 하와이에 대해 딱히 별 관심이 없었고, 그 이름도 하루키의글에 나온 다른 많은 이름들 - 지명이든 술이름이든 음악이나 소설이나 기타등등 많은 이름들. 그는 아는게 참 많기도 하다 - 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 잊혀졌던 것 같다. 그 단편 자체도 대단한 감동을 준다던지 여운을남긴다던지 하는건 아닌지라 카우아이섬과 함께 잊혀졌었다. 하와이라는 곳 자체를 약간 낡은 느낌의 20세기적 휴양지? 이젠 신혼여행도 별로 안가는? 그정도로 생각했었고. '부곡하와이'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의온천동네 탓도 있을것 같다. 휴양지로서는 하와이보다 발리나 태국같은 동남아를 더 선호했던 분위기 였던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직접 가본적은 없었지만... 그리고 하와이에 대한 그런 인식은 2015년에 처음으로 가보고서야 바뀌게 되었고.
네 번째 하와이 (이번엔 카우아이) 여행을 다녀왔다. 정이 하루키의 작품중에 하와이가 나오는 두 작품을 가지고 왔다. 댄스댄스댄스와 도쿄기담집. 하나레이 만은 약 5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카우아이 숙소의풀사이드(이 표현도 하루키가 즐겨 쓰는것 같은데...)에서 후딱 읽었지만, 댄스댄스댄스는 나름 두 권짜리 장편이고 나는 여행지에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편이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리고 집에 와서 각각 상권과 하권을 읽었다. 이야기의 주제나 결말에 대해서는 딱히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여느 하루키의 장편처럼 약간 비현실적인 세상을 넘나들기도 하고. 이미 여러번 읽었던 이야기라 그런지 하루키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이나.... 글에서 드러나는 그당시 일본의 삶의 양식 같은걸 좀 더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 댄스댄스댄스를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도 그런것이다.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훌쩍 하와이로 떠나서 예약해둔 숙소에 묵으면서 해안가 바에서 칵테일이나 마시고 서핑이나 하면서 빈둥빈둥하다 렌터카를 빌려서 드라이브를 다닌다
제대로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는다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고, 필라프를 만들고.. 위스키를 마신다던지.....
모두 80년대에 쓴 하루키의 이야기들에서 흔히 보이는 삶의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21세기가 되어서야 익숙해진 삶의 방식 같은것이 일본에서는 80년대에 이미 흔한 것이었다. 라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여유가 좀 더 있는 사람들은 20세기에도 그런 삶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어보지 못해서 몰랐을 수도 있겠지....
또는, 하루키라는 사람 자체가 젊어서부터 서양 문학을 번역한다던지, 재즈카페를 운영한다던지 했었던 서양문화에 아주 익숙했던 사람이니까, 저런 삶의 양식은 아주 보편적인 일본인들의 삶의 양식이라기보다는, 하루키쯤 되야 가능한거였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든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참 별 생각을 다 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무튼 어떤 측면에서는 참 세련된 삶의 방식이다.
댄스댄스댄스를 처음 읽었던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의 나는 이 수 많은 묘사들을 절반이나 이해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저런 디테일따위 몰라도 주제를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지만, 그렇지만 예술이라는것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쌓여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예술을 널리 접하고 이해하는것이 삶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지만,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삶의 경험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고보니 내가 가지고있는 1997년판에서는 가타가나 표기를 그대로 쓴게 분명한 고유명사들이 정의2010년판(4판2쇄) 에서는 비교적 원래 발음에 맞게 수정되어있는것도 재미있다.
포토 데라시 - 포트 데 러시 Fort Derussy
카라카와 거리 - 카라카우아 거리 kalakaua avenue
하레크라니 - 할레쿨라니 Halekulani
등등...
카라카와거리...... 초판이 나온게 1989년이고, 번역가는 1922년생이니 이걸 번역할 때 이미 60대셨다.
지금이야 웹서칭으로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 시대지만 그당시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번역가도 참 힘들었겠다.
*이 블로그에 차뜯는얘기말고 내 생각을 쓴게 참 오랜만이다. 이 글이 블로그 부활(?)의 시초가 될지 단발성으로 끝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글이란걸 써보니 재밌네.